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문단 편집) == 특징 == [[1972 뮌헨 올림픽]] 이후로 IOC 회원국 전체가 참여한 대회였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북한]]과 [[쿠바]]도 참가했다. 거기다 통일된 [[독일]]과 통일된 [[예멘]]이 참가한 올림픽이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논란으로 참가정지를 당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 차별의 종식과 함께 다시 올림픽에 참가했다.[* 다만 국기가 아닌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6/South_African_Olympic_Flag.svg/750px-South_African_Olympic_Flag.svg.png|올림픽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다. 이유야 당연히 당시 깃발이 아파르트헤이트를 연상시키기 때문. 이후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2년 뒤에 열린 동계올림픽]] 때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6/South_African_Olympic_Flag_1994.svg/360px-South_African_Olympic_Flag_1994.svg.png|바뀐 위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하였으며, [[넬슨 만델라]]가 취임하면서 현재의 국기로 교체되었다.] [[소련]]은 해체되었으나 [[발트 3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단일 팀[* 구 소련 국가 대부분이 [[독립국가연합]]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이 팀을 '독립국가연합 팀'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나 공식 호칭은 그냥 '단일 팀(영어 Unified Team, 불어 Équipe unifiée)'이다. 약칭 EUN. 단 [[유로 1992]]의 구 소련 팀은 '독립국가연합'이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MBC의 고창근 캐스터가 중계방송시 이 팀을 언급할 때 'EUN'이라고 언급했다.]'이란 이름으로 단일 팀을 구성하여 참가했으며, 금메달 45개, 은메달 38개, 동메달 29개로 [[미국]]을 그야말로 박살내며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러시아로 참가한 다음 대회부터는 1위와 거리가 멀어지더니 현재는 우승권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우승한 대회가 되었다. 개최국 [[스페인]]은 홈[[버프]]를 받아서 6위를 하고 [[한국]]은 스페인에 이어서 7위를 했다. 그에 반해 동유럽의 스포츠 강호였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유고슬라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유고 연방내 수많은 국가들이 분리독립하여 붕괴되면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나마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같은 유고 연방에서 독립되어 나온 나라들이 출전했던 데 반해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도국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신 유고연방]]은 [[보스니아 전쟁]] 과정에서의 학살 지원 문제로 발목이 잡혀 올림픽 출전이 금지되고 말았다.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만 참가할 수 있어서 국기가 아닌 오륜기를 들고 참가했다. 신 유고연방의 올림픽 출전 금지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전쟁, 내전 상황속에서도 올림픽 대회에 당당히 참가했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스리랑카]], [[레바논]], [[모잠비크]], [[앙골라]]와는 대조적이었다. [[북한]]도 이 대회에서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면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여 종합 16위에 올랐다. 반면, 일본은 금메달 3개에 그치면서 [[1952 헬싱키 올림픽]] 이후 가장 낮은 순위인 17위를 기록하였다. 보시다시피 북한에게도 밀린다... 그런데 다음 올림픽은 23위라는 더 낮은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이 대회의 진가는 성화봉송식 마지막 장면에 있다. [[https://youtu.be/1iIovkT_340?t=20m|'''불화살'''을 이용해 성화를 점화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고의 성화 봉송 중 하나로 회자될 정도의 명연출이었는데 사실 이전까지는 베를린 대회 이래 별 특색없이 최종 성화주자 1인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점화하는 식이었으나, 직전 대회였던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http://www.youtube.com/watch?v=9-77-fyhJ2U|'3명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해서 성화대에 점화]]해 의미도 담고[* 원래 [[손기정]] 옹이 점화할 예정이었으나 너무도 뻔하게 예상되었던지라 경기장 진입 주자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손기정]]-[[임춘애]]-최후의 3인(김원탁, 정선만, 손미정)으로 되었는데 각기 체육계, 교육계, 문화계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특히 지극히 평범한 세 사람을 성화 점화주자로 내세운 것은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노태우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보통 사람들|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뜻도 있다.] 변화도 주었다. 이후로는 매회 획기적인 성화대 점화 방식을 내비치는 것이 경기대회의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 대회의 불화살 점화식은 세계인에게 성화 점화를 하나의 이벤트로 각인시킨 것이었다. 사실 불화살은 성화대 안에 골인한 것이 아니라 성화대 위를 지나가서 경기장 밖으로 떨어졌다. 스쳐도 화살의 불이 가스에 이어붙는 식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별 탈없이(?) 안전하게 점화되었다. 물론 온전히 불화살의 불로 점화된 것은 아니고 타이밍을 맞춰 성화대 자체의 점화 장치도 가동시킨 것.[* 성화 봉송 당시 만일의 대비를 위해 소방관들이 배치해 있었다고 한다.] 이 화살은 안전하게 회수되어 기념으로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성화를 점화한 사람은 스페인의 [[휠체어]] 양궁 선수인 안토니오 레보요다.[* 잘 서 있기에 왜 휠체어를 타는지 궁금할 수도 있을 텐데, 의족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상을 잘 보면 오른쪽 다리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을 볼 수 있다.[[https://spoliveofficial.tistory.com/tag/%EC%95%88%ED%86%A0%EB%8B%88%EC%98%A4%20%EB%A0%88%EB%B3%B4%EC%9A%94|#]]] 성화 점화 후 대회 주제가 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초대형 오륜기가 몬주익 스타디움 중앙에서부터 펼쳐져 각국 선수단 전체를 뒤덮은 장면은 역대 올림픽 개회식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감동적인 명장면이다. [[바르셀로나]]는 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떠오르게 됐다. 이전까지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카우디요]]의 탄압으로 말미암은 스페인의 [[흑역사]]로 인지도가 낮아 숨겨진 여행지였으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내내 보여준 아름다운 항구와 시가지의 모습에 반하여 많은 여행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올림픽이 가져다 준 긍정적인 효과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의 지역 감정이 상당부분 치유된 모습이 확인된 대회다. 축구 대표팀은 카탈루나의 특징을 고려해서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축구 예선 경기를 치렀는데,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오르자 결국 바르셀로나에 가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처음에는 혹시나 [[누 캄프]]에서 야유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축구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스페인 국기를 흔들면서 열광적으로 대표팀을 응원했고, 경기에서 스페인이 승리하며 축구 금메달을 가져갔다. 지역감정 문제가 어느 정도 남았더라도 극단적인 대립은 없다는 점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간 내내 주경기장 및 공식 시설에는 스페인 국기가 아닌 카탈루냐 깃발이 휘날려 여전히 지역주의/분리주의 문제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스페인에서 열렸지만 [[스페인어]]나 [[카탈루냐어]] 순서가 아니라 [[프랑스어]] 순서대로 입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